1960년대 한국은 실업난이 심각해서 외화 획득과 실업난 해소라는 2가지의 이익을 위해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 인력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종전 후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재건에 성공하여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이 취업 기회가 많다 보니 힘든 일을 마다하여 육체 노동이 필요한 직업은 인력이 늘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국과 독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파독 간호사들


이번 인간극장의 주인공 정명렬(67) 씨도 1970년 정도에 독일로 파견을 갔었던 한국인이었습니다. 간호사는 광부와 달리 전문 인력 아닌가? 싶겠지만 그때 파견되어 간 간호사들은 오늘날로 치면 간병인 같은 일을 주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명렬 씨는 한국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3년을 목표로 갔고 월급 중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긴 채 한국으로 송금하며 성공적인 파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명렬 씨와 남편 맨프레드 브라운 씨의 결혼식


그런데 지금의 남편 맨프레드 브라운 씨(74)를 만나 결혼하고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독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독일의 통일을 겪었고 시부모님들이 구 동독이 고향이라 구 동독 땅 위커뮌데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북한땅이 고향인 노부부가 통일 후에 고향땅으로 돌아간 것이죠.




시부모님은 거기서 오래된 풍차를 구입했는데 이걸 호텔로 개조하여 며느리인 정명렬 씨가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정명렬 씨를 설득하여 결국 정명렬 씨도 위커뮌데로 이주하게 되었고 거기서 호텔의 경영자로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산 지가 한 18년 쯤 됐다는군요.




근데 처음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도무국은 모르고 일본 출신이냐 중국 출신이냐 등등의 질문만 받으니 안 되겠다 싶어 한국 홍보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호텔을 는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설명하고 통일을 위한 모금도 하고 매년 '한국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어 한국 전통 공연도 열고 음식들도 대접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완전 성공하여 공연 몇 개월 전부터 자리 예약이 끝날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더불어 호텔 운영도 잘 되어 지역 경제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주 총리의 경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 지역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이라고 하네요.


또한 한국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한민족여성재단으로부터 세계를 빛낸 여성사업가 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빛나는 인생을 살아온 정명렬 씨는 아쉽게도 이제 풍차호텔을 접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남편 맨프레드 브라운 씨의 병 때문에 요양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호텔도 팔았다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 '한국의 밤' 행사를 준비하는 정명렬 씨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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