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인근을 유기견인 듯 떠도는 유명한 개가 있습니다. 덩치도 제법 큰 백구인데 목욕을 얼마나 안 했는지 백구가 아니라 흑구인 줄 알겠네요.


골목 골목을 누비며 다니는데 차들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이 익숙한 지 어디든 잘 다닙니다.



자세히 보니 엉덩이 아랫쪽에 뭔가가 덜렁이는데 고환이 커져서 혹처럼 달려있네요. 어떤 병이 있음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몇 년째 이러고 다녔기 때문에 동네사람들도 백구를 많이 알고 보살핌도 받는 것 같네요. 먹이를 챙겨주기도 하고 만나면 반갑다고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밤에 머물며 지내는 곳이 있는데 어느 건물의 주차장입니다. 모퉁이 한쪽 구석에 누군가 이부자리도 깔아주었네요.



어느날 백구가 보이지 않자 주차장 보금자리에 찾아가 보니 많이 아픈 듯 누워만 있습니다. 수의사가 와서 살펴보더니 상태가 안 좋으니 데려가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진찰해 보니 고환은 역시 혹이 생긴 병이었고 무엇보다 시급한 건 떠돌이 개가 많이 갖고 있는 심장사상충! 얼른 치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혹도 아직 암은 아니지만 제거수술을 해야 하구요.





일단 심장사상충약을 처방하고 수술은 주인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나섭니다.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이 백구는 오랫동안 연극무대에 섰던 배우견이었습니다. 주인은 연극 제작자인 모양인데 다른 일을 하느라고 신경을 못 쓰고 방치하다시피 풀어놓고 살았던 것 같군요.



백구의 주인은 처음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 쳤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미안함을 표합니다. 그래도 완전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백구는 수술을 통하여 건강을 되찾고 활발한 모습도 되찾았습니다. 목욕도 시켜보니 털이 하얗고 뽀송뽀송한 게 확실히 백구가 맞군요ㅎㅎ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파란 불일 때 알아서 건널 만큼 매우 똑똑한 백구는 나이가 무려 16살이랍니다. 주인의 얘기는 아니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만일 맞다면 사람으로 치면 100살 정도는 된 것이죠. 앞으로 살아도 얼마 못 살텐데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Posted by 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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